지난 8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거리를 걷다 흥미로운 행사 깃발이 눈에 띄었다. ‘Klimagoumet woche’,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기후미식 주간’이다. 기후와 미식의 조합이라니. 이 멋진 조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이 음식선택에서 환경적 영향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이렇게 미식을 기후의 관점에서 보자는 행사가 공공연하게 홍보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독일의 기후위기 인식 수준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일화도 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예약하는데, 결제 과정에 ‘CO2 Compensation’(이산화탄소 보상)옵션이 있었다. 버스 이동 중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완화 활동에 기부할 것인지를 묻는 내용이다. 버스를 탈 때에도 기후위기를 고려하는 것이 독일사회의 일상이다.
또한 네덜란드 교육부와 암스테르담 시정부측은 주최 행사 식단의 기본메뉴를 채식으로 한다고 결정내린 바 있다. 이제는 식물성 식품이 가득한 메뉴들 중 몇 개의 메뉴가 육식으로 정해지는 메뉴판으로 바뀌고 있다. 채식이 ‘뉴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기나 생선을 원하는 참석자들에게는 별도의 요청을 받아 선택권을 존중한다.
2019년 발표한 캐나다 정부의 식이법 가이드는 더욱 놀랍다. “채소, 과일, 통곡물 그리고 단백질 식품을 충분히 섭취하라. 단, 단백질은 식물성 식품을 더 자주 선택하라.”라는 내용이다. 식물성 단백질 식품에는 단백질뿐 아니라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포화지방이 적기 때문이다. 더불어 “영양학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단백질 식품을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라는 권고도 있다. 이러한 식물성 식품의 강조는 건강은 물론 환경적 영향도 고려한다.
채식을 ‘뉴노멀’로 선언한 네덜란드는 이미 2016년부터 육류를 일주일에 2회까지만 섭취하고, 단백질은 콩이나 견과류 등 식물성 식품을 통해 섭취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생선도 주 2회에서 1회로 권장량을 줄였다. 이는 식습관이 건강과 지구환경(주로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이다. 먹거리 생산부터 폐기까지의 전 과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동물복지, 그리고 공정무역(생산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 등이 고려됐다. 캐나다 네덜란드 와 더불어 영국, 독일, 스웨덴, 호주 등도 마찬가지다.
2019년 8월 8일 유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는 특별 보고서를 발표했다. 에너지 생산방식과 운송수단 전환만으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으며, 육류 및 우유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IPCC는 전 세계 온실가스의 22% 가량이 가축 생산 및 소비에 의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소를 키우기 위해 밀림이 파괴되고,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토지와 물, 화석연료가 사용되며, 방귀와 트림을 통해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70배 이상 큰 메탄이 다량으로 발생한다. 아마존의 산불도 소고기 소비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한국은 외딴 섬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 기후위기와 음식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이다. 에너지와 자동차를 넘어 이젠 미식의 영역까지도 기후위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4~5년 사이 유럽과 영어사용권의 채식인구는 10배 가량 증가했다. 이제 한국의 식문화도 기후미식의 관점에서 재편돼야 한다. 기후미식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의철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