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신동으로 불리다가 20여년의 공백과 함께 방황하던 바이올리니스트 선형훈이 다시 무대에 선다. 선형훈은 선병원을 경영하는 선두훈·승훈·경훈 형제의 막내로, 현재 이 병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선형훈은 20여년의 방황과 공백을 깨고 12일 서울 서초구 프레미에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초청 음악회에 오른다. 그는 5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13세 때 이미 국내 최고의 이화경향 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수상 직후 13살 어린 나이에 조국을 떠나 미국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로 유학, 이차크 펄만과 정경화 등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를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 교수의 마지막 제자로 사사했다.
이후 네덜란드로 유학,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소개로 레닌그라드 오케스트라 악장을 역임했던 빅토르 리버만 교수를 만나 음악의 새로운 해석과 다양한 연주 기법을 배웠다. 그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하며 다시 뉴욕으로 건너와 카플란 교수에게 사사했다. 미국과 유럽 등 각종 마스터 클래스 등 페스티발에 참가 했고 아시아, 미국 등지에서 연주회를 열며 활발히 활동해 왔다.
어린 시절, 각종 콩쿠르를 휩쓸며 ‘신동’ 소리를 들었던 선형훈. “세계적 연주가로 성공하기 전에는 고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도미(渡美),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10시간씩 턱밑이 시커멓게 변색될 정도로 연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자하는 열망이 너무 높았던 때문일까. 선형훈은 스승인 줄리아드 음대 갈라미안 교수의 타계로 충격을 받고 기나긴 좌절과 방황기를 갖게 된다. 이때부터 최근까지 지난 20여 년간 바이올린을 잡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뒤늦은 결혼생활과 함께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딛고 최근 다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을 향한 마음과 열정이 꿈틀 거리기 시작한 것.
그래서인지 그를 아는 주변 지인들은 한창때보다 더 깊은 소리가 나온다고 평한다. 오랜 좌절과 공백기를 거치며 쌓인 내공(?) 때문일 수도 있다며 지인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 그의 재능을 아끼고 흠모하던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김중진 현 필라델피아관현악단 악장은 “그 당시 줄리아드음대를 다녔던 음악계 선후배들은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선형훈이 다시 악기를 잡았다고 하자 진심으로 축하하고 반기고 있다”고 했다.
지인들은 “당시 그를 좋아했던 뉴욕의 음악인들이 모여 내년 말쯤 트리뷰트 콘서트(Tribute Concert)를 열기로 약속까지 했다”며 그의 귀환을 반기고 있다. 그는 오는 12일 가슴을 파고드는 사라사테(P. Sarasate) 찌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의 빠르고도 힘차며 애수가 깃든 바이올린 선율을 들려줄 예정이다.
디트뉴스 최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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