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따스한 햇살과 가족의 사랑, 행복 등은 ‘살아있을 때에야’ 비로소 만끽할 수 있는, 이 세상이 주는 선물이다. 이를 타인에게 직접 건네줄 순 없지만 마음껏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의사’다.
암의 전이 상태가 심해 더 이상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환자를 살린 ‘명의’가 대전에 있다. 선병원재단 유성선병원의 자궁암센터 최석철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최 박사는 자궁경부암과 난소암, 자궁내막암, 외음암, 융모상피암 등의 부인고종양의 전문 진료와 복강경 수술 권위자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지난 2013년 깊은 고민에 잠겼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 불가 판정을 받고 찾아온 한 환자 때문이었다. 이 환자는 당시 굉장히 크고, 많은 양의 암 덩어리가 골반벽까지 전이된 상태로 방사선 치료까지 받아 장기가 딱딱해진 상황이었다. 전례를 찾아보기 드문 사례여서 모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최 박사 역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중 수술을 진행하기로 마음 먹게 된 건 딱 한 가지, 암이 다른 곳엔 전이되지 않아 이 수술만 성공하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에게 아직 세상이 주는 선물을 더 받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술에 들어가 1.5㎝의 공간을 내기 위해 혈관을 묶고 자르는 데만 약 4시간이 흘렀다. 이제야 겨우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기까지 장장 13시간이 걸렸다.
국내에서 유일한 수술 케이스에 성공한 최 박사는 학창시절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전부 의사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닮으려다 자연스럽게 의사의 길을 걷게 됐다.
대학시절 그의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고교생처럼 앉아서 수업을 들어야 하고 실제 써먹지도 못하는 이론을 외우는 건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 박사는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겪다 보면 궁금한 내용을 찾아보기 위해 스스로 책을 보게 된다”며 “의대에선 3학년부터 실습을 하게 되는데 너무 늦다고 본다. 1학년부터 직접 환자를 보고 느끼고 공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대부분의 의사들이 우물 안에서만 하늘을 보려고 하는데, 우물 밖으로 나와 더 큰 세계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현장을 중시하던 최 박사는 2004년 세계에서 유일한 수술법을 가진 독일의 헤켈 교수를 찾아 연수를 떠난다. 독일 의사면허가 없어 헤켈 교수의 수술 장면을 직접 목도할 수 없게 된 그는 카메라를 막대기에 달아 14시간의 수술과정을 촬영하는 열의를 보였다.
최 박사는 “복강경 같은 수술은 본인이 한 수술을 녹화해 꼭 다시 봐야 한다. 최고라고 손꼽혀도 분명히 수정할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뭐든지 이만하면 됐다는 건 없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은 곧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꾸준한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강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