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놓치는 환자, 가장 안타까워”
지역 내 유일, 24시간 대응시스템 구축
뇌졸중. 말 그대로 ‘뇌’ 기능이 ‘졸’지에 ‘중’지되는 증상을 말한다.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발생한다. 그러나 빠른 시간 내 의료적 처치를 받으면, 회복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골든타임’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가까운 병원으로 내달리는 것이 최선일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한호성 선병원 뇌졸중센터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문치료실을 갖춘 병원에 신속하게 도착하는 게 중요하다. 뇌졸중학회가 인증하는 전문치료실을 갖춘 병원은 전국에 40여개 밖에 없다. 대전에는 충남대병원과 선병원 정도가 있다. 장비도 장비지만 의료진이 상주하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환자는 발병이후 3일 정도 불안정한 시기를 거치는데 이 때 의료적으로 잘 대처해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선병원 뇌졸중센터가 문을 연 것은 지난 4월이다. 한호성 센터장 홀로 근무하던 2년 전만 해도 선병원은 뇌졸중 응급환자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촌각을 다투는 대전 유성, 세종시, 공주지역 뇌졸중 환자들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선병원을 놔두고, 다소 먼 곳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한 센터장은 “그것이 늘 안타까웠다”고 회고했다.
“사실 병원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뇌졸중 전문치료실을 갖추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설과 인력 등 투자비용은 많이 드는데 의료 수가가 작다보니 병원경영에 별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병원 경영진은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그게 2012년 12월이다.”
- 그때 뇌졸중센터를 열기로 결정했는데, 실제로 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이유가 있나?
“뇌졸중센터의 취지에 공감하는 의사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기존 병원들도 신경과와 신경외과, 재활의학과가 협업을 하지만, 각 과마다 주장이 다르다보니 환자를 치료하는데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뇌졸중센터에 들어오면 3개과 의사가 환자를 동시에 보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한다. 이런 시스템에 동의하는 의사를 찾는 일이 그렇게 쉽지 만은 않았다.”
- 산고 끝에 옥동자를 낳는다고 지금은 이 분야에서 정평이 난 의료진이 의기투합한 것으로 들었다. 선병원 뇌졸중센터의 장점이 뭔가.
“사실 대전지역에서 뇌졸중에 관해 24시간 진료시스템을 갖춘 곳은 선병원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이야기했듯, 뇌졸중은 촌각을 다투는 병이다.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했는데, 의사를 호출하고 기다려야 한다면 큰 손해다. 선병원 뇌졸중센터는 즉시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신경과 3명, 신경외과 2명, 재활의학과 1명, 이렇게 6명의 의료진이 포진했다. 한마디로 ‘드림팀’이다.”
한 센터장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 자부심이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그는 선병원에 근무하기 전 국립대병원에 근무했다. 그런데 국립대병원 의료진의 복지부동 마인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료진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기에 환자가 뒷전으로 밀리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최상의 장비와 풍부한 인력을 가지고서도 그 좋은 시스템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병원들이 많다. 환자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다. 의사라기보다 공무원 같다고 할까. 참 변화에 둔감한 모습이다.”
사실 변화에 둔감한 것은 국립대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의료시스템 자체가 얼마나 굼뜬지는 최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미국 USC 뇌졸중센터 교환교수로 재직한 경험이 있는 한 센터장에게 ‘미국과 한국’ 두 나라 의료시스템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고 물었다.
“미국이 의료선진국인 점은 분명하지만, 의료시스템이 한국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의료비가 너무 비싸다. 민간보험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큰 병원이라고 해서 장비가 모두 훌륭한 것도 아니다.
반면 한국은 좋은 장비에 훌륭한 인력이 넘쳐난다. 의료비도 세계 최저 수준이다. 공공보험 시스템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 놔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환자를 중심에 놓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시스템이 약하다. 의료수가부터 시작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의 화두는 ‘어떻게 환자 중심의 병원을 만들 것이냐’에 맞닿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선병원이 그 목표에 근접한 병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의료인이 자신이 몸담은 조직 때문에 지치고, 불만에 가득 차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런 면에서 그는 ‘행복한 의사’로 비쳐졌다.
“이 병원에 와 보니까, 환자들의 민원이 진리처럼 수용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모든 시스템이 환자 중심으로 움직인다. 의사결정이 간소하고 빠르다보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덩치가 큰 병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뢰하는 풍토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그의 지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이번엔 좀 더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의사가 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모범답안을 준비해 둔 듯 그에게서 거침없는 답이 흘러나온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강조하신 말씀이 있다. ‘사람을 도와주는 가장 좋은 세 가지 방법이 뭐냐. 첫 째는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일, 둘째는 무지한 사람을 가르쳐주는 일, 셋째는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일’이라고 하셨다. 돈을 벌어 사회에 봉사하는 일을 할 수도, 또는 선생님이 돼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선택할까도 고민해 봤다. 그러나 세 가지 좋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은 의사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다.”
그는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선병원 뇌졸중센터를 지역 주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24시간 드림팀이 대기하고 있는 가까운 병원을 놔두고 먼 곳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가기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환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의사로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물었다. 역시 의사다운 답을 제시한다.
“선병원이 좋은 시스템을 갖췄다고 해서 ‘여기가 정답’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신체마비, 발음장애, 어지럼증 등 뇌졸중 의심증상이 나타나면 뇌졸중 치료가 가능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 골든타임은 3시간 안팎이다.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좋아지겠거니 하고 늑장을 부리다 나중에 후회하는 환자를 만날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
세종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