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병원은 지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 한명의 의심·확진환자도 발생하지 않았고, 1차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돼 시민들에게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질투 어린 눈빛을 병원계로부터 받기도 했다. 메르스 확진자가 선병원에 들르지 않아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병원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대전에 메르스 확진자가 확인된 후 메르스 대응 TF팀을 만들어 24시간 비상대기체제에 돌입했다. 모든 내원객을 대상으로 24시간 열 측정을 실시하고, 정상인 사람에게 '열감별 정상'이란 스티커를 부착해줬다. 공기 중 감염위험을 대비해 공조시스템을 끄는 등 철저한 준비로 메르스와의 초반 기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규은 선병원 경영총괄 원장은 “유비무환의 자세로 메르스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덕분에 큰 재앙을 막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선병원에선 메르스 의심·확진환자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고도 하지만, 특별한 대응책이 있었을 것 같다.
▲우리 병원이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잘 버텼다고 평가하고 싶다. 나름 전투적으로 이번 사태를 대처해나갔다. 확진자가 경유하거나 추가 환자가 발생한 병원들이 전쟁을 치른 것처럼 우리도 전쟁이었다. 메르스 대응 TF팀을 바로 구성해 하루 2번씩 대책 회의를 했다. TF팀은 휴일도 반납하고, 자발적인 당직 근무에 들어갔다. 24시간 비상대기체제를 유지했다. 일찍이 선별진료소 운영을 위한 준비도 마쳤었다. 대전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후 병원 외부에 설치한 선별진료소 운영을 개시했고, 호흡기 환자만을 위한 진료소도 따로 마련했다. 체온이 정상인 내원객에게 파랑색 '열감별 정상' 스티커를 부착해 환자와 의료진간의 불안을 해소했다. 혹시 모를 메르스 의심, 확진환자의 내원을 대비해 응급실에 8명이 입원 가능한 음압병실의 준비도 철저히 했다. 공기시스템을 통한 감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중앙공조시스템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전 직원과 환자들에 대한 열 측정은 말할 것도 없다.
-열감별 정상 스티커는 다른 병원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였는데.
▲사실 아이디어를 내가 직접 냈다. 사람들이 불안하게 생각하는 게 뭐였나. 이들이 병원을 기피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뭔가. 병원을 가면 메르스에 감염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옆에 있는 환자가 기침만 해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생각해봤다. 환자가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체온 측정 결과 이상이 없다'는 스티커를 환자들이 붙이고 있으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또 간호사나 의사들도 사람인데 덜 불안해할 것 아닌가. 감염에 대한 예방도 있지만,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스티커를 부착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스티커 부착의 효과는 컸다. 환자는 물론 의료진들의 불안과 불신을 해소했다. 이 스티커가 '안심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다. 다른 병원들에서도 스티커 부착을 실시했다고 들었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안정성을 인정받아 1차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돼 그 역할을 수행해왔다. 다른 곳보단 병원의 피해 상황이 적을 것 같다.
▲1차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된 덕분에 병원 입장에선 나름 덕을 봤다. 하지만 시민들이 병원을 방문하는 것 자체를 위험하다고 봤기에 우리도 피해가 컸다. 외래환자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건강검진의 취소와 연기문의가 이어졌다. 선병원재단이 운영하는 곳이 대전선병원, 유성선병원, 선치과병원, 국제검진센터 등 4곳이다. 모두 합쳐 하루 3500명이 넘는 환자가 방문했지만, 메르스 여파로 40% 정도 환자가 급감했다. 그러나 병원 운영이 문제가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추가 확산을 막고, 시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했다. 또 시민들이 안심하고 진료 받을 수 있는 병원이라는 타이틀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안심병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만 시민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 직원이 하나가 됐다. 24시간 비상근무에 지칠 법도 하지만 피곤하단 얘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메르스가 사실상 종식 수순을 밟으면서 환자는 거의 100% 회복이 됐다고 보고 있다.
-병원과 의료계는 물론 사회전체가 메르스 사태로 마비됐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사실 메르스 사태가 우리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무조건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참 좋은 경험을 했다고 본다. '지구촌'이라 불리는 시대다. 전 세계를 하루 혹은 만에 모두 갈 수 있는 세상이다. 세계화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있지만, 대륙이나 특정 지역의 풍토병, 즉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는 위험도 커졌다. 메르스도 중동에서 넘어온 경우가 아닌가. 앞으로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병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번 사태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 깨달았다. 모두 고생한 이번 경험이 단지 기억으로만 남겨지는 게 아니라 앞으로 대책과 대응 시스템을 준비하는,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돼야할 것이다.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긴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그동안 메르스 공포에 다들 너무 움츠렸고, 피폐해진 것이 사실이다. 메르스 초기엔 우왕좌왕했었지만, 지금은 시민과 병원, 지자체, 보건당국 등이 하나가 돼 국내 메르스 종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자긍심을 갖고, 좋게 평가해도 맞지 않겠나. 부족한 부분은 빨리 보완하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평가해 앞으로 닥칠 신종 감염병에 대비하는 게 옳다고 본다는 얘기다. 긍정적인 효과 중 한 가지를 살펴보자. 이번 일로 감염에 대한 개인의 방어능력이 일취월장했다. 손을 닦는 기본적인 개인위생 수칙 말이다. 우린 어렸을 때부터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을 씻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손을 잘 씻는 사람이 전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이번 사태 이후 사람들이 손을 씻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개인위생만 잘 지켜도 감염병을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메르스로 홍역을 치렀지만, 국민 보건 위생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서 감염병 예방 능력도 같이 올라갔다. 병원 입장에서도 값진 경험인 셈이다. 온갖 고생을 다했지만, 감염병과 실전으로 붙어본 게 아닌가. 자신감도 생겼을 테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방법도 경험한 셈이다.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낯선 감염병으로 그동안 고생이 너무 많으셨다. 이젠 누굴 탓하기보다 서로 '잘했다'는 격려의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본다. 메르스를 이겨낸 것은 어느 한 사람, 기관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합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시민 대부분이 메르스 공포를 떨쳐내고, 모두 일상생활로 돌아가신 것 같다. 선병원은 앞으로도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좋은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
중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