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사태가 사실상 종식 단계로 접어들었다.
21일 기준으로 186명이 확진받았고, 36명의 사망자를 낸 메르스는 그 동안 136명이 완치 퇴원했고 여전히 14명이 치료중이며 1만 6668명이 격리조치를 받으며 국민 건강을 위협했다. 메르스를 극복해 나가는 동안 각종 언론에서는 항상 의료진의 사투가 조명을 받았다.
의사, 간호사를 비롯해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약사,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의무기록사 등 수많은 면허 보유자들 속에서 면허 없이 ‘음지에서 꿋꿋하게’ 병원을 지켜온 이들에 대한 뒷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의료진은 물론 행정팀, 시설팀, 미화팀, 홍보팀, 심지어는 국제의료팀의 코디네이터까지 한 몸으로 메르스에 대처했던 ‘조연들’에 엄지를 치켜세운 이가 있다.
바로 선병원재단 이규은 경영총괄원장이 그 주인공 .“연기자의 연기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기 위한 조연과 매니저, 코디네이터 등의 노력도 알아달라”는 이 원장을 만나봤다.
◆결혼식장에서 힌트 얻은 스티커, 전국 히트
메르스 확산 사태 기간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들은 입구에서 체온을 잰 뒤 열이 없는 내원객들에게 ‘정상’이라는 글자가 박힌 스티커를 붙여줬다. 선병원 측은 이 스티커의 원조가 바로 이규은 원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원장은 “메르스 확산 초기 외래 대기실에 가보니 환자들끼리 서로 불안해하고 서로를 의식하면서 피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눈에 띄었다”며 “의료진들 역시 환자가 열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불안하게 진료를 하길래 이걸 어떻게 하면 해결이 될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결국 열이 없다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지인 자녀의 결혼식장에 갔는데 식당 입구에서 스티커를 붙여주더라. 무릎을 치고 다음날 바로 도입했다”며 “그 이후 정상 스티커가 붙은 환자들끼리 서로 의심도 안하고, 의료진도 적극적 진료가 가능했다는 말을 듣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메르스 확산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피해를 겪지 않은 것에 대해 병원 측은 이같은 초동대응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원장은 “병원 주위 장사하시는 분들이 ‘선병원은 아직도 메르스 환자 없다면서요’라고 물으면서 오히려 고맙다고 하셨다”며 “이른 바 목동, 중촌동의 ‘선병원타운’에 있는 상업 종사자 분들이 메르스 감염병원이 아닌 데 대해 많은 격려를 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메르스 확산 사태에 안심병원 지정
이 원장은 메르스 확산에도 안심병원으로 지정된 것에 대해 “모든 구성원이 기동성있게 잘 대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병원은 대형병원들의 메르스 확산 분석을 통해 응급실에 집중했다고 했다. 대형병원 응급실은 워낙 많은 사람이 방문하다 보니 앉아있을 자리가 없어 감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 선병원만의 ‘스마트 컨셉트’를 가동해 환자와 환자, 보호자와 보호자 간 간격을 넓혔다고 했다.
또 선병원은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 첫날 즉시 중앙 공조를 멈추고 병원 전체 공조를 자연 순환으로 전환해 즉각 가동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업을 통해 병실과 병실 간 공기 순환을 차단해 혹시모를 감염 가능성까지 대비했다는 것이다. 또 과거 신종플루 창궐 당시 응급실에 7~8명이 격리 치료가 가능한 음압 스타일의 병실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안심을 줬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중환자실 감염 부분에 철저하게 대비해 음압, 양압방을 만든 것이 큰 효과를 봤고, 감염내과 김광민 과장을 야전사령관으로 해 모든 의료진이 혼연일체가 돼 대비와 방어를 철저히 해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아무래도 국민안심병원으로 초기에 지정을 받았고,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거나 경유하지 않은 병원이었기 때문에 응급실 진료가 꾸준히 이어져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본다”며 “이는 우리 전 구성원의 기동성 있는 대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공을 돌렸다.
◆조연들의 활약, 의료진 사투 도왔다
의료진의 활약에 대해 물었더니 이 원장은 “연기자가 연기를 잘하려면 지원팀이 얼마나 뒤에서 잘 도와주느냐가 중요하다”는 답을 내놓았다.
이 원장은 이내 “연기자가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듯, 우리 병원은 의료진이 의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숨은 곳에서 도움을 주는 멤버들이 많았다”며 “그들에게도 조명이 비춰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감염내과 김 교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무조건 ‘오케이(OK)’ 하고 빛의 속도로 최선을 다해 도왔다”며 행정팀의 노고를 소개했다.
이어 “시설과 직원들은 메르스 확산 기간 거의 퇴근을 못하고 병원에 남았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고 시설적 문제를 빨리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눈물겹게 고마운 것은 미화팀 직원분들이다. 이분들은 손에 알코올 스펀지를 놓은 적이 없다”며 “문고리, 엘리베이터 버튼, 손잡이란 손잡이는 누구 손이 닿기만 하면 닦고, 닦고 또 닦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원장은 “심지어 국제의료팀에 소속된 러시아, 몽골, 중국, 카자흐스탄 출신의 코디네이터들까지 가담해 병원 입구에서 스티커를 붙여주는 일까지 돕는 등 누구하나 이탈되는 사람이 없었다”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의료진은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간호사들, 특히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우리 병원으로 중환자가 대거 몰리다보니 병상을 계속 늘려야 했다”며 “중환자들이다 보니 신경을 계속 써야하는데 거의 2교대로 근무하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그는 “의료진이 앞장서 환자를 보고, 메르스 방어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뒤에서 어시스트, 백업하는 의료진 이외의 멤버들이 제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효과가 배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구성원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선병원,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향상 꾀할 것
메르스 사태를 접하면서 선병원재단은 실보다는 득이 더 많았다고 했다. 분명 매출에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위기관리, 감염에 대한 개념과 주의 등 병원의 기본에 대해 다시 한 번 체감하는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병원에 있는 사람은 감염에 대해 조금만 느슨하면 무섭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에 경종을 울렸다는 면에서 상당한 발전 있었다. 실보다 득을 갖다준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글로벌 시대인 만큼 앞으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풍토병이나 감염성 질환들이 들어올텐데 그런 부분에 대한 철저한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또 선병원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됐을 것이란 기대감도 품고 있었다.
이 원장은 “우리 병원은 그동안 대학병원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지역 내에서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떨어졌던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그러나 서울에 있는 ‘빅5 병원’을 비롯해 전국 병원들이 앞다퉈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는 병원이 대전에 우리 병원 말고 어디 또 있나. 결국 우리 병원 시스템, 병원 특화를 의료계에서 높이 평가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의료계에서는 분명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막상 근처에 있는 시민이 몰라주는 것에 대해 아쉬웠는데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병원을 경험하지 못했던 시민이 새로 경험하시면서 재인식이 된 부분은 고무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병원 재단은 앞으로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팽창을 통해 발전을 이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원장은 “병원수출이라는 게 아마 우리 선병원이 선두주자일 것이다. 국내 최초로 유럽에 의료시스템을 수출한 것을 비롯해 여려 나라에 진행하고 있다”며 “국위선양일 뿐 아니라 세계시장에 병원수출이라는 포문을 여는 게 다른 병원들에게도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 개척정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굳은 각오를 내비쳤다.
경영총괄원장으로서의 각오도 다부졌다.
이 원장은 “이 모든 것들을 실현하려면 우리 병원의 내실이 다져지지 않고는 인정 받을 수 없다. 대전의 선병원이 여러가지 면에서 검증을 받고, 시스템적으로, 경영적으로 진료의 적정성 이런 것들 모범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병원은 거의 세계수준의 병원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훌륭한 의료진을 영입하고, 선진의료 도입하고, 그래서 최고의 병원상을 만들어가겠다. 우리 대전시민에게, 충청지역 모든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최고의 병원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충청투데이